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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소수민족 마을 “LOC NINH” 방문기 마무리
작성일 20-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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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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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가정방문 : 부모가 없는 아이들


오늘도 마을 가정방문을 다니기 위하여 밖으로 나섰다. 첫 번째 집에서는 어린 꼬마들이 많았다. 

초코파이를 나눠주며 인사를 건냈다. 아이들 옆에는 어른이 한 분 계셔서 잠시 옆에 앉았다. 

이 아이들은 누구냐고 물으니 손주들이란다. 아이 엄마는 어디갔냐고 물으니 모른다고 하신다. 

아이들의 부모는 자식을 버리고 알 수 없는 곳으로 나가서 이 어르신 혼자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고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조그만 이 집도 정부에서 준거란다. 

할머니에게도 초코파이를 하나 건내드리고 준비해간 따뜻한 옷도 아이들 중에서 잘 맞을 것 같은 아이에게 선물로 주었다. 

아이가 인사를 안하니 할머니가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라고 다그치신다. 

할머니는 우리가 누군지도, 어디에서 왔는지도, 왜 갑자기 자기집을 방문했는지도 아무것도 모르지만 아무 거리낌 없어 보였다. 

그리고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다리를 다쳐서 목발을 짓고 계신 남자분의 집이었는데 무슨 일로 왔냐며 경계했다. 

개들도 무섭게 짓고, 옆에 있는 아이에게 초코파이를 주려고 하니 괜찮다고 하시길래 인사하고 발길을 돌렸다.


길을 걷는데 천막집에서 청년이 우리를 보며 소리쳤다. 

그래서 가까이 가 보았다. 아침은 먹었느냐고 물으니 지금 준비하고 있단다.

그냥 임시 천막 같은 곳에서 잠자고 요리하고 씻고 하는 것 같았다. 아침부터 혼자 쪼그리고 독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후추나무밭 모두가 자기 땅이라고 했는데 행색은 한 달 정도 씻지 않은 모습이었고 알콜중독자 같았다. 

정확한 사정은 모르나 의외로 소유한 땅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청년은 마르타 아주머님 댁에도 술 취한 채 잠깐 들렸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신자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목에도 묵주를 걸고 있었다. 밭은 있지만 술만 먹고 일은 안해서 점점 망가져 가는 것이 안타까웠다. 

나무가 많은데 왜 일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청년 말로는 후추 생산이 잘되지 않는다고 했다. 

눈이 다 풀려서 초점이 없었다. 청년 집 주변을 돌아보았다. 앞에는 땅을 파 물이 채워져 있었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음으로 어린 아이가 있는 집으로 갔다. 알 수 없는 고기 한덩이를 나무에 불을지펴 끊이고 있었다. 

고기가 타서 그런것인지 색깔이 너무나 검했다. 이게 쥐 고기인가? 생각했다. 

한 아이는 물통을 지고 물을 길러 나가려던 참이여서 나가고, 남은 한 아이는 장애가 있었다. 

이 삼촌이 말하기를 이 아이들도 부모가 없단다. 낳기만 하고 부모는 나갔단다. 

알고보니 집 앞에 있는 땅으로 빚을 잔뜩 진 상태였다. 어떤지 대충봐도 알 것 같았다. 


이어서 중학생 학생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데 건너편에 다리가 다친 할머니가 우리를 쳐다보고 계셨다. 

할머니에게도 인사를 드렸다. 할머니 세례명은 마리아라고 했다. 다리에 아주 큰 상처가 있었다. 

아파서 걷지도 못하니 그렇게 앉아서 우리만 쳐다보고 계셨던 것이다. 

할머니의 손을 잡고 기도와 베트남 성가를 불러주었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셨다. 

오늘 만난 모든 이들 안에서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하고 계심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다시 마르타 아주머니네로 와서 마르타 아주머님의 하소연을 들었다. 은행에 빚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남편은 일을 하지않으니 아주머님은 더 속이 탄다. 

둘째 아들은 빚을 내서 오토바이를 산 것이기 때문에 고된 노동을 하면서 조금씩 청산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돈이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은행에 빚을 다 갚을 때까지만 건강을 지켜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신다고 한다. 

아주머님은 삶의 어려움을 신앙의 힘으로, 기도로써 이겨내고 계셨다. 

대부분의 이곳 사람들이 글자를 모르는데 마르타 아주머님은 글을 읽으셨다. 

작은 성경책 끝부분에 누렇게 손때가 타 있는 것을 보니 그동안 힘들 때마다 얼마나 성경 말씀을 읽으며 기도를 바치셨을지. 

고난스러운 일상에서 하느님을 찾는 절박함이 느껴진다.


자비의 기도를 바치기 위해 할머니들이 한두 명씩 공소에 오기 시작했다. 

할머니들과 같이 기도하면서 나는 이곳 마을에 주님의 자비와 축복이 가득 내리기를 빌었다. 

함께 기도할 때마다 계속 이 복음 말씀이 내 마음속에 맴돌았다.


 “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


할머니들에게 묵주팔지를 선물로 드렸는데 너무나 좋아하셨다. 

우리는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귀한 것이 묵주 팔지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서 더 챙겨올걸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 마을은 공산화가 더 일찍 시작한 지역이라고 한다. 

1992년부터 20년 동안 성당도 없었는데 정부에서 허락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공소는 정부가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가 갔던 공소도 사실 허락을 받아서 지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성체를 모실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마을은 여전히 마약하는 사람과 알콜 중독자가 많다고 한다.



마무리

가난한 이 마을 사람들의 삶에서 인상적인 것이 몇 가지 있었다. 

이 마을에서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종일 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밤새 북을 치고 조문객을 맞는다. 

시끄럽다고 여길법도 한데 마을 사람들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아닌 우리의 이웃이 세상을 떠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인을 오롯이 추모할 뿐만 아니라 남아있는 유가족들의 슬픔을 위로하고자 많은 마을 사람들이 고인이 가시는 길을 

마지막까지 오토바이로 뒤를 따라 동행하고 묘지에 가서 매장을 하려고 관을 내리면 함께 간 모든 사람들이 그 위에 한 줌의 흙을 뿌린다.


언제나 집 문도 활짝 열어놓기 때문에 지나가다가도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고 특별히 어떤 이유가 없이도 그 집에 들어가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만남에 특별한 이유가 없다. 가난한 마을에 이웃과의 교류가 오고 간다. 물질적인 나눔보다 더 중요한 나눔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곳에서 안타까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술로 하루를 시작하며 일상을 무료하게 보내는 총각, 빚을 지고, 아이의 뺨을 때리는 아저씨,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이곳에 남겨진 어린 아이들, 

글을 모른다고 남편을 무시하고, 가꾸지 못하는 아내의 외모를 비난하는 부부, 오토바이를 타고 다친 청소년 운전자, 

게임중독에 빠져 공부도 일도 신앙도 버린 청년, 에이즈에 걸려 일찍이 세상을 떠난 마리아와, 그리고 삐오 아저씨. 

모두가 하느님의 자비와 기도가 절실한 사람들이다. 

이들을 보면서 가난과 무지로 인한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여전히 공통적이라는 생각이들었다. 

그래서 슬프다.


살아있는 기도를 배우고 왔다. 

가난한 이들을 향한 가난한 나의 기도가 주님의 뜻을 이루는데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기를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