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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소수민족 마을 “LOC NINH” 방문기 3
작성일 20-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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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날

이른 아침. 기도를 마치고 우리가 머물고 있는 공소 주변 쓰레기를 줍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다. 

길에 쓰레기통도 없고 대부분 아무곳에서 쓰레기를 휙휙 버리는 편이다. 담배꽁초가 가장 많았다. 

마르타 아주머니 부부네도 방바닥에 담뱃재가 많고, 아예 이불 위에는 담배 재떨이를 놓고 살고 있었다.  


에이즈로 세상을 떠난 33살 마리아의 옆집에 사는 언니가 오셨다. 

그분에게는 10살짜리 똑똑한 아들이 있는데 이름은 “동”이다. 동이는 나에게 살갑게 다가와 쓰레기 줍는일에 즐겁게 동참했다. 

내가 이것저것 질문을 하면 야무지게 답변도 잘 했다. 가시가 있는 줄 모르고 나무 사이로 들어가 쓰레기를 줍다가 내 엄지 손가락에 가시가 박혔다. 

동이는 재빨리 다가와 내 손을 보더니 조그만 손으로 냉큼 가시를 빼주었다. 그러면서 얼마 전 자기도 똑같이 가시가 박혔었다고 했다. 

동이가 워낙 귀엽기도 했고, 쓰레기 줍는 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준 것이 기특하기도 해서 미리 준비해 챙겨왔던 선물을 주니 동이는 날아갈 듯 기뻐했다.


동이가 집으로 돌아간 후 스팅족 마을사람들의 가정방문을 다니며 기도했다. 

제일 먼저 방문한 집은 차마 집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초라했다. 아저씨가 다리를 다쳐서 움직일 수 없다고 했다. 

좁은 공간 안에 냄비와 수저 젓가락이 있는 것을 보니 그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있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누가 식사를 주는지 물어보니 다행이 딸이 있어서 해준다고 한다. 

종교를 가지고 있는 분은 아니셨지만 함께 기도하겠다고 하면서 간단하게 주모경을 바치고 옆집으로 이동했다. 

옆집에는 아주 마른 소수민족 할머니 혼자 살고 계셨다. 또 그 옆집도 혼자사시는 할머니셨다. 할머니는 입안이 온통 빨갛다. 

사실 전부터 나는 궁금했었다. 대부분 이곳에 계신 할머니들이 입속에 무엇을 물고 계셨는데 아파서 피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약을 물고 계신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혼자 추측하기로 양치를 제대로 못하고 치료를 받지 못해서 치아가 아프기 때문에 저렇게 빨간약을 물고다니나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방문한 집 할머니가 자세하게 이것이 무엇인지 꺼내와 보여주시면서 알려주시기로 그냥 사탕 같은거라고 한다. 

껌을 십듯이 어렸을 때부터 습관처럼 물고다니는 것일 뿐이라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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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사탕 재료
 


어떻게 먹는건지도 보여주셨는데 나뭇잎 위에 분홍색 감도는 가루를 묻히고 그 안에 무슨 말린 열매를 넣고 싸서 먹는다. 

그런데 사탕이라고 하기에는 중간에 뱉고 싶을 만큼 맛이 너무 쓰고 딱딱했다. 이 할머니는 신자분이셨다. 

그래서 십자가 나무 목걸이를 선물로 드렸더니 좋아하신다. 다음날 그 목걸이를 목에 걸고 기도하러 공소에 오셨다. 

그 주변의 집들을 더 방문하고 짜오렁 (chao long: 돼지 내장으로 만든 죽)을 먹고 잠시 쉬었다.


다시 돌아가신 빼로 아저씨네로 갔다. 

오늘 매장하는 날이라서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디등(di duong : 고인의 관을 뒤따라 안장하는 곳까지 함께가는 예식)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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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등을 하는 마을 사람들



나는 캄보디아에서 온 바이(bay) 라는 이름을 가진 아주머님의 오토바이를 타고 따라갔는데, 

그곳까지 꽤 먼 거리였음에도 흔쾌히 태워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많은 사람들이 고인의 가시는 마지막 길을 함께했고 끝까지 지켜보았다. 

돌아오는 길 바이 아주머님 집에 들렸다. 아주머님 집에는 어린 꼬마들이 4명이 있었다. 두 명은 아주머님의 딸이고 두 명은 조카라고 했다. 

모두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아이들은 아직 학교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베트남어는 모르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말하는데 크메르어인지 소수민족 언어인지 정확하게 구분할 수는 없었으나 분명한건 베트남어는 아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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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 아주머님 딸
 


다시 마르타 아주머님네로 돌아와 짜이보를 다듬고 있는데, 아침에 쓰레기를 줍고 선물을 받아 무척 기뻐했던 동이와 동이 엄마가 다시 인사를 하기 위해 찾아왔다. 

오후 수업이 있어서 동이가 학교 가기 전에 들린 것이다. 

그런데 인사를 하고 나가려는 길 골목에서 지나가는 오토바이와 동이가 타고 있던 오토바이가 부딪혀 접촉사고가 났다. 

퍽 소리에 너무 놀라 우리 모두 뛰어나가 보니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어린 오토바이 운전자도 넘어져 있고, 

엄마 뒤에 타고 있던 동이도 오토바이 뒤에서 떨어져 어깨부터 손가락이 아프다고 했다. 

크게 다친 것은 아니였지만 너무 걱정이 되어 ‘뼈는 보이지 않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계속 아프면 꼭 병원을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때 동이 엄마는 병원을 가고 싶어도 치료비가 걱정되어 선뜻 대답을 못한 것 같다. 

나중에 엄마를 다시 만나 치료비가 없으면 말하라고 했더니 엄마는 눈시울이 빨갛게 변하면서 울먹거린다. 


그날 나와 함께 동이엄마와 동이는 의사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그런데 시골인지라 병원은 여기서 2시간을 더 가야했고 지금 출발해서는 병원은 이미 문을 닫아서 의사를 만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가까운 조그만 약국을 20분 정도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 도착했는데, 

의사가 상주해 있다고 했지만 특별히 의사가 봐주는 것도 없었고 약사에게 간단한 약만 처방받아서 마르타 아주머니네로 돌아와야했다. 

혹시 약을 먹어도 아프고, 불편함이 있으면 꼭 다시 우리에게 이야기해달라고 동이엄마에게 당부했다.


그날 밤 늦은 저녁을 먹었다. 페로 아저씨는 우리를 위해서 일찍부터 키우는 닭을 잡아 쪼그리고 앉아 손질하고 계셨었다. 

그 닭으로 특별한 음식을 해주기 위해서 양념도 미리 재워놓고 나무에 불을 지펴서 노릇노릇 구워주셨다. 

아저씨는 우리가 수녀라는 이유로 정성을 다해 더 잘해주시려고 애쓰셨다. 그런데 그때 이곳으로 한 청년이 찾아왔다.  

그 청년은 자신이 군인에서 얼마 전 나왔노라며 당신들은 어디 출신이냐고 대뜸 물었다. 우리는 몽족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그 군인은 뭔가 의심스러웠는지 재차 우리의 신원을 묻기 시작했다. 

옆에서 듣고 계시던 페로 아저씨는 우리를 보호해주기 위해서 이분들이 우리집에 손님으로 오셨는데 왜 자꾸 그런걸 묻는거냐며 청년에게 큰 소리를 쳤다. 

나는 겁이 나기 시작했다. 군대에 갓 나온 청년이 우리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고 더군다나 술까지 취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온 선교사임을 알고 혹여나 신고라도 하면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집요한 질문을 피해보다가 그래도 안되겠다 싶어서 나는 도망가듯 그 자리를 피해 설거지를 했다. 

빨리 나가려고 했는데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도 보려고 하길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을 동동 굴렸다. 

옆에 계시던 마르타 아주머님이 큰 소리를 치며 돌려보내서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박해시대 선교사들은 이렇게 무서워하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겁이 났는지 모르겠다. 

그날 밤 우리가 댕기에 걸릴까봐 걱정되신 페로 아저씨는 늦은 시간임에도 찾아와 모기장을 만들어 주셨다. 

망치로 두드리며 단단하게 못으로 고정까지 시켜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