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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가지 않던 길만 간 바보 아닌 바보 사제(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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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경아 작성일16-12-12 18:53 조회3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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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희 단체 이사님이신 호인수 신부님의 은퇴를 앞두고 한겨레신문에 게시된 기사입니다. >>

남이 가지 않던 길만 간 바보 아닌 바보사제

[짬] 정년은퇴하는 인천 부개동성당 호인수 신부

77년 인천 기도회 성명서 써 ‘연행’
“아는 게 없어 창피해 공부 시작”
노동자와 도시빈민의 든든한 벗
공해 의료···현장 지킨 대부

사제 서품 40년···31일 은퇴 미사
“아픈 이, 슬픈 이, 힘든 이 곁에”


모퉁이 슈퍼 앞에서 만난 애기 엄마/ 로만칼라를 안 하시니/ 그냥 동네 아저씬 줄 알고/ 인사도 안 했네요// 로만칼라 안하길/ 참 잘했다’ 최근 펴낸 세번째 시집 <목련이 질 때>에서 고백하듯, 호인수(68) 신부는 로만칼라보다 점퍼가 더 어울리는 사람이다. 늘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다니고, 성직자라며 폼을 잡지도 않는다. ‘신부 같지 않은 신부’, 그러나 그는 7일로 사제 서품을 받은 지 딱 40년이 된 원로다. 그가 지키온 건 성당만은 아니었다. 현장을 지켰고 사람을 지켰다. 인천의 농촌지역인 고잔동과 김포, 어촌인 백령도와 덕적도, 공단지역인 부평과 주안동 등이 그가 거쳐온 곳이다. 현장 사람들과 애환을 같이 해온 그가 정년을 맞았다. 인천 남구 부개동성당으로 은퇴를 앞둔 호 신부를 찾았다.
‘단칸방엔 밤이 새도록 어미의 숨죽인 흐느낌만 쌓이고 하느님도 돈 없고 못 생긴 아이는 슬그머니 외면하셨다/…/신부라고 내게 찾아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이제는 수녀도 틀렸고 죽기도 글렀으니 이 더러운 몸 술집에나 판다고 순자는 울부짖는다’ 그가 시에 쓴 ‘순자’는 어디에나 있었다.
성당2층 사제관에 도착해 그가 따라준 목련차를 마시는 사이 전화벨이 울렸다. 부개동성당에 다니다 멀리 이사를 간 외로운 할머니가 그의 정년은퇴 소식을 듣고 전화를 한 것이다. “이제 신부님을 볼 수 없느냐”며 울음을 그치지 않는 할머니를 그는 한참동안 달래고 또 달랬다. 사제관은 싸늘했다. 냉난방을 거의 하지 않고 살아왔다. 부개동성당은 최근 네팔 지진으로 피해 입은 학교 재건을 위해 올마이키즈에 1억5천만원을 지원했다. 서민지역의 가난한 성당에서는 그런 큰 돈을 감당하기 어렵다. 따로 헌금을 걷을 그도 아니다. 이렇게 내핍하며, 신자들과 성당 재정을 아껴 그 돈을 모았다.
호 신부는 그렇게 살아왔다. 1980년대 김근태·인재근·김문수·이호웅·이우재·김영환 등이 인천의 공단에 위장취업을 해 노동운동을 하다 쫓겨다닐 때, 숨을 곳이 없던 그들이 찾은 보루도 호 신부였다. 교구청은 노동운동의 배후세력으로 찍힌 그를 백령도로 보냈다. 인천에서 일주일에 단 두 번 오가는 배를 타고 12시간을 가야했던 백령도에선 군부대 여단장이 왕처럼 군림하던 시절이었다. ‘오늘은 배를 띄울 수 있다, 없다’며 어부들의 생사여탈을 좌지우지했다. 어부들을 대신해 그 ‘왕’과 싸운 이도 호 신부였다. 백령도 역사상 처음으로 어부들이 어업권 보장을 외치며, 군부대 앞에서 시위하는 ‘자신감’을 얻은 것도 그가 있기에 가능했다.
호 신부는 환경운동의 태두였던 공해문제연구소를 정호경 신부·최완택 목사·최열씨 등과 함께 만들어 활동했다. 빈민운동가 제정구, 이호웅, 이우재 등과 인천사회운동연합을 만든 데 이어, 의사 홍성훈씨 등과 빈민의료협의회를 결성했다. 사제들이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하려면 평신도들이 깨어나게 해야 한다며 80년대 우리신학연구소를 만든 것도 그였다.
그는 한번도 잘 닦인 길을 달린 적이 없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만 골라 간 바보였다. 그러나 얌전히 성당만 지키고 있지 않은 그는 주교에겐 말썽장이였고 골칫덩이였다.
애초부터 말썽장이는 아니었다. 그는 “‘박정희’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신수 좋은 사제들처럼 골프나 치고 다녔을 거”라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박정희 유신독재가 극으로 치닫자 사제들이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결성해 항거하기 시작했다. 77년 신참 사제였던 그는 고참 사제들의 명을 받고 인천교구기도회 성명서를 썼다. 다음날 부평경찰서 지하실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중앙정보부 요원과 경찰은 그가 쓴 표현들을 무슨 생각으로 했느냐며 따져 물었다. 그는 도무지 아는 게 없어서 대답도 못하고 쩔쩔매다 나왔다.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럽던지.” 그때부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사회와 세상 부조리의 원인을 캐기 위해, 사회와 정치에 눈을 뜨기 위해 많은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났다.
호 신부와 한번만 얘기를 나눠보면 배추 속보다 연한 그의 속내가 빤히 들여다 보인다. 아프고 힘든 약자들을 외면하지 못하는 그의 마음은 ‘사회운동’이 되고, 때로는 ‘시’가 되었다.
남다른 성당 운영도 그런 연민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가톨릭에서는 미사 때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로 간주하는 포도주와 빵의 성체를 나눠 먹는데, 여성은 이 성체 분배도 하지 못하게 하는 등 성차별 문화가 적지 않다. 그러나 호 신부는 여성에게도 성체 분배를 허용하고 미사 시중을 드는 복사를 시켰다. 사목회장도 늘 남자는 회장, 여성은 부회장이던 것을 남자 회장·여자 회장을 따로 두었다.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점차 부담스러워하자 교구의 반대에도 공동고해를 도입했다. 신자들이 좀 더 편하게 고민을 내놓을 수 있게 만든 것이다.
호 신부는 가톨릭은 성직자 중심이라 주교 신부들이 제자리를 찾으면 500만 신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그러면 우리나라가 금방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가톨릭 신자가 많이 늘어난다지만 세상을 밝히는 구실을 못하는 것 같아 은퇴하는 마음이 무겁다. “박근혜도 김기춘도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호 신부는 요즘 토요일마다 광화문에 나간다. “광화문이 너무 좋다. 민심이 천심이구나, 성령이 역사 하는구나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의 은퇴를 앞두고 지인들이 그의 글을 모아 펴낸 <또 다른 사랑법> 출판기념회를 겸한 잔치가 오는 15일 오후 7~9시 인천 남구청 대회의실에서 열린다. 그는 오는 31일 오전 10시40분 은퇴미사를 끝으로 성당을 떠난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아픈 이·슬픈 이·힘든 이들이 있는 ‘현장’을 떠나지 못할 것 같다. 그의 선한 눈매가 그렇게 말한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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